'분노하라' 만큼 지속적으로 외쳐져야 하는 것 책에 관한 여러 잡다한 것들

... 하마스가 이스라엘 스테로트 시에 로켓포를 발사하면 효과가 있는가? '없다'가 답이다. 그런 행동은

포를 쏜 쪽의 대의명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가자 지구 주민들의 이런 몸짓을 보고 격분에

의한 행동이라고 이해할 수는 있다. 분노가 끓어 넘치는 상태를 '격분'이라고 한다면, 폭력이란 도저히

용납 못할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내린 유감스러운 결론이라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를 이해

한다면, 테러리즘이 격분을 표출하는 한 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이 격분은 부정적 표현이다. '도

에 넘치게 분노'해서는 안 되며, 어쨌든 희망을 가져야 한다. 격분이란 희망을 부정하는 행위다. 격분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고, 당연한 일이라고까지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용납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희망이 긍정적 결과를 낳을 수도 있는 경우에, 격분 탓으로 그것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 ...

                                                                                                             <분노하라> 30 ~ 31P

... 이 작은 책의 내용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이 있다면 바로 '비폭력에 대한 호소'입니다. '저항해야

한다'는 말은 내 마음속 생각을 100퍼센트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표현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제 이야기는

혁명을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혁명은 이미 여러 차례 경험했고, 그 혁명들은 대개 안 좋은 방향으로 귀결

되곤 했습니다.

 나는 호소합니다. 우리의 정신을 완전히 개혁하자고, 폭력은 거부해야 합니다. 우선 효과가 없기 때문에

그래야 합니다.
폭력 행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증오만이 더욱 깊이 뿌리내리며 복수심이

더욱 불타오를 뿐입니다. 폭력은 폭력의 악순환을 더욱 심화시킵니다. 미래로, 희망으로 향한 문을 닫아

버리게 합니다. ... (중략)

 하지만 꼭 알아두십시오! 비폭력이란 손 놓고 팔짱 끼고, 속수무책으로 따귀 때리는 자에게 뺨이나 내밀

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비폭력이란 우선 자기 자신을 정복하는 일, 그다음에 타인의 폭력성향을 정복하는

일입니다.
참 어려운 구축작업입니다. ...

                                                                                                               <분노하라> 64 ~ 65P


 사실 저자 스페판 에셀이 <분노하라>라는 소책자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전 부터 진보진영에서 천만

번은 나왔을 내용이다. 심각해지는 양극화, 자본 권력의 대두, 저널리즘 독립의 위기 등의 부정적 현실에 대

해 관심을 가져 '분노하라'라는 주장은 시사에 관심을 가진이라면 상당히 진부하게까지 느껴질 말이니.

 하지만 위에 인용된 부분에 대해서는 분명 신경쓰는 이들이 다수 존재하기는 했지만 천만번 까지는 외쳐지

지 않은 것 같다. 한 천번 정도? 스테판 에셀이 위에 말한 바가 '분노하라'라는 선언 만큼 자주, 지속적으로 외

쳐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에셀이 분명히 전제했듯이 폭력을 촉발시킨 원인에 대한 인식과 이해가 반드시

수반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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