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를 움직인 지도자들>에 소개된 처칠과 아데나워의 진보성 정책 책에 관한 여러 잡다한 것들

... 1906년 최초의 자유당 내각이 구성되면서 32살의 처칠은 입각하였다. 그 후 몇 년 동안에 그는 6개의 각료 

자리를 거쳤다. 어느 자리에서나 그는 왕성한 호기심과 무한한 정력으로 소임을 다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상무상 때는 입법을 주도하여 오늘의 영국을 있게 한 기반을 마련하였다. 내무상으로서는 새로운 제도의 

도입으로 광부들의 일일 8시간 근무제를 확립하였고, 탄광내 안전설비를 의무화하였다. 그는 또한 14세 이하

소년들의 지하작업을 금지하였고, 상점노동자의 휴식시간 의무화, 최저임금제의 수립, 실업감소를 위한 전국에

걸친 노동시장의 설치와 교도소의 대우를 대폭 개선하는 등 그 활동은 자못 눈부신 것이었다.
 
 이러한 일련의 조치들은 사실상 오늘의 복지국가로서의 영국을 가능케 한 기초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의욕적인 개혁의 와중에서도 그는 사회주의와 자유주의 사이에 분명한 선을 긋고 있었다. ...

                                                                                       <20세기를 움직인 지도자들> 리차드 닉슨 61P

... 에르하르트가 정책 수행을 하는 데 끝까지 고수하였던 지침은 아데나워의 '권력분산 원칙'이었다.

12년에 걸친 독일 파시즘의 체험과 소련의 체제를 꿰뚫어 보고 있었던 그로서는 공사(公私) 어느 쪽에도

과도한 권력이 집중할 때 갖는 위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산업의 국유화도 반대하였지만

독점기업 또한 허용치 않았고, 동시에 임의 태업과 함께 부당 노동행위도 용서치 않았다.

 1951년 아데나워는 독일의 유력한 노동운동 지도자와의 역사적인 회담에서 노동자들도 산업자문회의에서

경영진과 동석하여 같은 자격으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합의하였다. 이런 동반자적 관계가 30년 동안

적어도 독일에서는 노동 분규가 없게 하는 데 공헌했던 것이다. ...

                                                                                      <20세기를 움직인 지도자들> 리차드 닉슨 317P

완고한 보수주의자들로만 알았던 이들이 나름의 진보적인 정책 또한 펼쳤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이런 사례를 다시 곱씹다 보면 보수와 진보 진영 사이의 정책 갈등을 풀 실마리를 찾을수도 있지 않을까.

덧글

  • 2011/02/24 12:2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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