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를 움직인 지도자들>에 소개된 드골과 맥아더의 대담함 책에 관한 여러 잡다한 것들

... 맥아더와 마찬가지로 드골도 자신의 신체적인 위험은 절대로 돌보지를 않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런 류의

용기가 사람들에게 주는 감명을 너무도 잘 계산하고 있었다. 드마레와 플룸이 쓴 <표적 드골>에 의하면, 드골의 

생명을 노린 암살 미수는 생애에 모두 31회나 된다고 하였다.

 1962년에 파리 교외에서 있었던 그의 승용차에 대한 기관총 세례는 그의 머리로부터 불과 2인치 옆을 스치는 

것이었다. 공항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린 드골이 유리 조각을 털며 하는 소리가 "녀석들 솜씨가 시원찮군 !

이번에는 꽤나 가까웠는데, 내 운이 좋았나?" ...

                                                                                     <20세기를 움직인 지도자들> 리차드 닉슨 128P


... 메츠 전투 때 적의 일제 포격하에서도 태연히 앉아 있던 그는 눈에 띄게 안절부절하는 부하를 향해 이런 말을

하였다. "독일군은 맥아더를 죽일 수 있는 포탄을 아직 만들지 못했어!"

 전쟁이 끝난 후 한 번은 뉴욕 고속도로에서 노상 강도를 만났다. 맥아더는 도둑에게 총을 버리고 나와 한 판 

싸움으로 돈을 뺏어가라고 소리 질렀다. 

 상대의 뜻밖의 행동에 어리둥절한 도둑, 맥아더를 찬찬히 노려보더니 느닷없이 큰절을 하고 달아나는 것이었다.

후에 안 일이지만 도둑은 바로 무지개 사단 참전용사로 맥아더의 옛 부하였던 것이다.

 2차대전 중 맥아더는 일본군의 공격하에서도 의자에 앉은 채 잠들기가 일쑤였고, 한참 교전 중에도 포탄이 날아

오면 피할 곳부터 생각하느라 정신없는 부하나, 장군에게 피신할 것을 건의하는 병사들을 무시하고 쌍안경으로

적정을 살피는게 예삿일이었다.
 
 그럴 때면 으래 그는 호언하기를 "아직은 나를 명중시킬 탄환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가 자주 보인 호담한 용기는 거의 무모한 연극에 가까웠다. 

 1945년 필리핀에 상륙하였을 때 탈환한 일본의 포로수용소를 방문하였는데, 그곳에서 학대와 굶주림으로 피골이

상접한 옛 부하를 만나게 되었다. 진노한 맥아더, 수행하던 군의관에게 "여기까지 와서 작군은 안보고 갈 수는

없다. 일본군의 본대가 있는 최전방까지 가보겠다."고 한 후 , 일본군의 시체를 뛰어넘으며 성큼성큼 앞으로 전진

해 갔다.

 이윽고 일본군 진지에서 쏘는 기관총 사격 소음이 바로 앞에서 들릴 때까지 다가가서는 발걸음을 돌려 미군 진지

를 향해 걷기 시작하였다.

 동행한 참모는 금방이라도 기관총 사격이 등뒤에 가해질까봐 식은 땀을 흘렸다. ...

                                                                                                 <20세기를 움직인 지도자들> 196 ~ 197P

강한 의지가 이런 놀라운 대담성을 낳는 것일까...

한낯 범인인 본인은 운이 좋았기에 망정이지라는 생각이 우선적으로 드는게 어쩔수 없다.

덧글

  • 위장효과 2011/02/20 16:30 # 답글

    1. 프티 클라마르에서의 암살 미수 사건이군요. 그 사건이 나중에 프레드릭 포사이드의 걸작 "자칼의 날"에 대한 모티브가 되었지요. 실제로 거기 나오는 내무장관, 경찰총장, 대통령 비서실장에 프티 클라마르 사건 주범까지 전부 실존 인물들이라서 더 박진감넘치지요^^.

    2. 맥아더는 한국전쟁에서의 삽질이 참...(38선 넘은 후 들어오는 중공군 관련 정보들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그저 진격만 명령한 건 아무리 좋게 봐줘도 대실책)
  • 월광토끼 2011/02/20 17:15 # 답글

    대담성이라기 보다는 대챡없는 프라이드의 결과가 아니었을지. 드골도 맥아더도 둘 다 융통성 없고 자부심은 커다란 사람들이였잖습니까.
  • 지나가던과객 2011/02/20 22:44 # 삭제 답글

    근데 맥아더 아재가 마마보이라는 얘기가 있습죠.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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