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전쟁>에 소개된 1920년대 미국 영화의 상당한 국제적 영향력 책에 관한 여러 잡다한 것들

... 소프트 파워의 본격적인 역사는 사실상 191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1차 세계대전 전까지 미국인들은

유럽의 문화제국주의에 비분강개하곤 했지만 이 전쟁을 전후로 하여 유럽과 미국의 관계는 완전히 뒤바뀌기

시작했다. 영화는 1895년 12월 28일 파리에서 최초로 상영했지만 1914년에는 이미 세계 영화 관객들의 85퍼센

트가 미국 영화를 관람하고 있었으며 1917년 미국 작가 업턴 싱클레어는 "영화 덕분에 세계가 하나로 된다. 즉,

세계는 미국화된다"고 확언했다.

 에밀리 로젠버그의 <미국의 팽창>에 따르면 "1920년에 이르면 미국의 서적, 영화 그리고 언론보도는 질레트

면도기나 하인즈 케첩만큼 세계 도처에서 이제 익숙한 것이 돼 있었다. 그리고 미국의 정보와 오락 문화에 세계

를 개방하고 접촉하는 임무는 새롭게 중요한 성격을 띄게 됐다.

 1920년대 초반 미국 영화는 1년에 700여편이 제작된 반면, 독일은 200여 편, 영국은 40여 편, 다른 유럽국가들은

각 10여 편에 불과했다. 1920년대에 할리우드의 영화는 전 세계 모든 상영 영화의 5분의 4를 차지했다. 1925년의

경우 미국 영화는 영국 시장의 95퍼센트, 프랑스 시장의 77퍼센트, 이탈리아 시장의 66퍼센트, 중남미 시장의 

80퍼센트를 장악했다.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지는 1925년 11월 7일자에서 기사 제목으로 "무역은 영화를 

따라간다"는 구호를 내걸었다. 이는 1920년대 미국 경제의 팽창주의 구호이기도 했다.

 영국 상원에서 한 의원은 미국 영화 때문에 중동의 소비자들이 옷과 신발을 미국 영화식으로 해달라고 주문을

해 골치 아프다는 불평을 늘어놓았다. 또 일본의 양복 재단사들은 고객의 주문 때문에 미국 영화를 봐야만 했다.

브라질에서는 갓 개봉한 영화에 등장한 차의 판매고가 35퍼센트나 급증했으며 캘리포니아 스타일의 건축물이

급증했다. 아직 권력을 장악하기 전인 독일의 히틀러가 열광적으로 즐긴 것도 바로 할리우드 영화였다. 불프 

슈버르츠벨러에 따르면 "당과 신문사 일을 제쳐놓고 영화를 연달아서 세 편 또는 네 편씩 보는 날도 있었다. 그가

제일 좋아했던 영화는 찰리 채플린, 버스터 키턴, 메이 웨스트나 더글러스 페어뱅크스가 나오는 영화였다 ...

                                                                                                                 <세계문화전쟁> 25 ~ 26P

책은 이러한 미국 영화의 세계 석권은 영화 담당 부서 설치, 각 국가에 대한 시장 개방 압력 등 정부의 강력한 지원

이 큰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지금이야 미국 영화가 전세계 영화시장을 석권했다는 것은 무덤덤하게 느껴지는 상식이지만 영화 산업의 초창기일

1920년대에도 미국 영화의 세계적 영향력이 상당했다는 것은 좀 놀랍게 느껴졌다. ㄷㄷ

덧글

  • Warfare Archaeology 2011/02/09 17:36 # 답글

    한번 읽어봐야 할 책 같습니다. 좋은 책 소개 감사드립니다.
  • dunkbear 2011/02/09 20:38 # 답글

    저도 좀 놀랐습니다... 1920년대에도 저정도였다니... 헐헐...
댓글 입력 영역



메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