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대를 위한 세계사 편지>에 소개된 현실사회주의의 한계를 보여주는 사례들 책에 관한 여러 잡다한 것들

... 그의 편집자 서문을 보면, 그는 이 책을 6일전쟁에서 전사한 자신의 친구에게 헌정하고 있습니다. 혹시 

마르크스주의자자로서의 아비네리는 식민주의에 대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글을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점령을 정당화하는 기제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길이 없었습니다. 영국의 식민주의가 

인도의 낡은 생산양식을 일소하고 자본주의적 진보를 가져온 것처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도 같은 효과를 

가져온다는 해석이 가능한 거지요. 역사의 진보를 위해서는 어설픈 윤리적 평가는 유보할 수 있다는게 마르크스

주의의 과학적 역사학이 추구하는 바이기도 하니까요. ...

                                                                                         <새로운 세대를 위한 세계사 편지> 34 ~ 35P

... 당신이 20대 초반에 취리히에서 간행했던 폴란드왕국 사회민주당의 기관지 <노동자 문제>는 기억하시죠?

기개는 넘치지만 여러모로 서툴기 짝이 없는 그 기관지에 폴란드 본국 노동자들이 보냈다는 독자 투고는 어땠

나요? 실은 다 당신이 쓴 거 아닌가요? 1890년대 초 본국의 노동운동과 사실상 단절된 젊은 망명 좌파 지식인

그룹이었을 뿐인 당신들은 항상 폴란드의 소식에 목말라했고, 그래서 폴란드에서 누군가가 왔다 하면 모두 몰려

가서 게걸스럽게 최근의 폴란드 정세를 듣고는 했지요.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본국에서 손님이 왔다 간 다음

이면, 폴란드 본국에서 보냈다는 노동자 당원의 가명 투고가 <노동자 문제>에 실려 그 모임에서 있었던 이야기

를 그대로 반복했다는 거지요. 글쎄, 일의 그 음성적 스타일로 보아서는 당신보다는 레오 요기헤스의 생각이었을

것 같은데, 사랑에 눈이 멀어서든 아니는 당신도 동의한 거지요.

 잠깐, 증거가 있나고요? 물증은 없어요. 심증만 있을 뿐이지요. 하지만 그것은 당신 주변의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공공연한 비밀이었잖아요. 완전히 없는 이야기를 지어낸 것도 아니고, 사회주의의 진보를 위해서 그 정도의

각색은 충분히 용서받을 수 있다고요? 물론이죠. 쫀쫀해서 미안합니다. 그러나 '진보'가 사람 잡는 거지요. 진보의

이름 아래서는 무엇이든 다 용서될 수 있다는 정서와 생각이 결국 현실 사회주의를 그 모양 그 꼴로 만든 게 아닌

가요? 권력의 온갖 추잡한 거짓말과 진실과 역사의 조작을 진보의 이름 아래 정당화한 그 매커니즘이 문제지요.

정의를 위한 거짓말은 선의의 거짓말보다 한 수 위잖아요 ...

                                                                                        <새로운 세대를 위한 세계사 편지> 182 ~ 183p

... 당신의 그 치열한 혁명가적 헌신을 쿠바 민중에게 똑같이 요구했을 때, 당신도 똑같은 우를 범한 겁니다. 미국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양키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볼리비아의 깊은 정글 농민들에게 반미 반제국주의 선전을 펼치는

전술적 무모함도 결국은 당신의 그 숭고한 도덕성이 혁명을 성층권에 붙잡아두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물론 이윤을

동기로 움직이는 자본주의와 그에 길들여진 소비 욕망도 무섭습니다. 그러나 도덕과 행복을 강요하는 사회는 그보다

더 끔찍할 수 있습니다. 당이 규정한 '새로운 인간형'에 맞추어 획일적 행복을 강요하는 유토피아는 이미 디스토피아

인 거지요.

 당신이 쿠바 민중을 억압했다니, 떨끝만큼의 가능성도 없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요?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

이 중앙은행 총재로 있을 때, 니콜라스 킨타나가 만든 32층짜리 쿠바 중앙은행 신축사옥 프로젝트를 기억하나요? 하긴

당신이 중앙은행 총재직을 맡았을 때, 이미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건지도 모르지요. 들리는 말로는 '경제학자(economi

sta)'가 필요하다는 카스트로의 말을 '공산주의자(comunista)'가 필요하다는 말로 잘못 알아들어서 당신이 손을 들었

다는 이야기도 있더군요.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그만큼 중앙은행 총재직을 수행하는 체 게바라를 연상

하기 힘들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가 돌았겠지요. 그런데 중앙은행 총재로서 당신의 혁명성은 그 신축사옥 설계안을 퇴

짜 놓은 데서 잘 드러나더군요. 생각나지요? 32층 건물에 무슨 엘리베이터가 필요하냐고 우기던 일 말이에요. 천식을

앓는 당신이 계단을 이용하겠다는데 건강한 사람들이라면 그렇게 못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게 당신 주장이었지요.  또

엘리베이터를 없에는 데 그치지 않고 화장실도 반으로 줄이라고 했다죠. '새로운 인간'은 금욕적이기 때문에 화장실

갈 일도 훨씬 적은 건가요?

 당신을 두고 "우리 시대의 가장 완벽한 인간"이라고 했던 사르트르의 평가를 부정해야 할 필요는 못 느낍니다. 당신의

혁명적 헌신성을 폄하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인간의 이름으로 영웅적 헌신성을 민중에게 요구한

면, 그것은 또 다른 압제지요. 모든 사람이 완벽하다고 생각하진 마세요. 보통 사람들에게 완벽을 요구하는건 또 다

른 억압입니다. ...

                                                                                            <새로운 세대를 위한 세계사 편지> 226 ~ 227P

마르크스, 로자 룩셈부르크. 체 게바라 그리고 여타 사회주의자들의 보다 나은 세상을 이루기 위한 이상과 그를 위한

의지라는 순수성 자체는 존중할만하다고 본다. 

하지만 위 사례에 언급된 방법적 오류와 지나친 원칙주의, 도덕주의는 그러한 선의를 자신들도 모르게 허물게 했다는

점에서 후세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이 또한 경계해야 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일부 진보 진영 인사를 보면 과거의 오

류를 되풀이하는듯하다. 

임지현 교수가 언급한대로 사회주의가 처음 태동할때나, 지구의 절반이 현실사회주의로 물들 때나, 현실사회주의국가

가 몰락한 지금이나 인간은 완벽한 이상적 존재가 아니기에 더욱더 과거로 부터 배워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야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먼 훗날 후세들에게는 찾아올수 있는 '인간적인 세상'이 도래할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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