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돌리드 논쟁 책리뷰

바야돌리드 논쟁바야돌리드 논쟁 - 8점
징 클로드 카이에르 지음, 이세욱 옮김/샘터사

비록 학계에서는 그리 환영받지 못하는 태도이지만 '재미있는 옛날 이야기'로서 인식되는 역사는 대중들에게

쉽게 어필할 수 있다. 16세기 중반 '신대륙'의 인디오를 '인간'으로 볼수 있는지에 대한 논란이 커지는 분

위기 속에서 열린 '바야돌리드 논쟁' 또한 그런 '이야기'로 살려낼 가치가 충분하다고 여겨졌는지 프랑스 작

가 장 클로드 카리에르는 이를 소설로 재구성해냈다. 과연 어떻게 360여 페이지 분량의 소설을 통해 '바야돌

리드 논쟁'이 되살아나게 됬는지 궁금해 읽어보았다.

이 작품은 바야돌리드 논쟁을 '재현'하지 않고 '재구성' 해냈다.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라스카사스와 세풀

베다의 열띤 논전은 실재로는 일어났는지에 대한 여부가 확실히 않으며 작품에서 5일 만에 나는 결론은 실재

로는 그 다음해에도 논쟁이 다시 벌어졌으며 결론은 공식적으로 발표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허구'의 사건이

다. 그렇다고 작품 내의 논쟁에 깔린 당대의 사고, 분위기, 라스카사스와 세풀베다의 주장까지 허구는 아니

다. 오히려 저자의 철저한 사료 참고를 통해 사실에 가깝게 반영되었다. 즉 이 작품은 '사실'인 역사적 흐름

을 '허구'적 요소가 가미된 무대를 통해 펼쳐냄으로 재구성해낸 것이다. <당통>,<마르텡 게르의 귀향> 등

영화와 연극 시나리오를 각색해온 저자의 경력에서 자연스래 나왔는지 작품의 흐름은 마치 영화 혹은 연극

과 같으며 또한 부담없이 즐길 수 있다.

신대륙의 '인디오'는 과연 스페인인과 같은 하느님의 가호를 받는 '인간'인가 아니면 보호받을 가치가 없

는 노예인가라는 논쟁의 쟁점은 지금 보면 매우 어처구니 없게 느껴질것이다. 하지만 당대 카톨릭 사제들나

신대륙에 정착한 스페인 지배자들에게는 규범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매우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인디오'가 인간이 아니라면 그들에게 강제적이고 폭력적인 '개도'행위를 할 수 있는지 또한 쟁점화 될만

하나 논쟁 초반에만 잠시 언급될 뿐 금방 묻혀버린다. 스페인 정복자들의 잔혹한 인디오 살육을 고발하고

인디오 역시 나름의 문명을 가지고 있다고 감정적인 열변을 토해내는 라스카사스 또한 사제라는 신분적 한

계를 벗어나지 못해 인디오들을 기독교인화 시켜야만 하는 스페인인의 '사명'에 동의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대적 한계 속의 프레임에 갇히다 보니 라스카사스는 인디오 또한 하느님의 가호를 받는 '문명화'

될 요지가 충분한 존재임을 강조하는데 힘을 기울인다. 반기독교적 성향을 가진 독자라면 기독교 사제로

서의 신분적 한계에 혀를 찰만할법도 하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인디오 문화의 상대적인 가치를 인정하고

궁극적으로 스페인인이 '신대륙'을 떠나야 한다는 급진적인 주장까지 한다는 점에서 라스카사스의 인디오

에 대한 보호 의지가 기만이라고 하기는 어렵겠다. 라스카사스 자신의 신분적 한계와 반종교개혁 분위기

가 심화되가는 카톨릭 사회 분위기 속에선 이 정도의 입장 표명은 최대치에 가깝다고 본다.

결말이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심각한 스포일러가 될 수 있지만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언급을

하지 않을수 없다.

인디오를 '인간'으로 인정하는 나머지 스페인 지배자의 농작지 인력 손실 우려에 대한 대체제로서 흑인을

들여올것을 명한 결론은 실재로는 논쟁의 결론이 공표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사실'로 확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인디오에 대한 보호 여론이 높아지자 농장주들이 대체인력으로 흑인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은 명백

한 역사적 흐름이기 때문에 역사와 어긋나는 결말은 아니다. 환경의 변화에 따른 집단의 적응이라는 흐름

을 한 개인의 결정으로 치환해냈다는 점에서 역사의 연극적 재구성이라는 본 작품의 성격에 걸맞는 결말

이라 하겠다. 홀로 쓸쓸히 모두가 떠난 회의실을 정리하는 흑인 일꾼의 모습으로 이야기를 끝마침으로 더

욱더 결말의 여운이 극대화 된다. 작품 내에서 라스카사스는 흑인 또한 '인간'이라며 결론에 반발하지만

추기경은 라스카사스 또한 이전에 훅인 노예를 부리는게 인디오 문제의 해결에 좋은 방법임을 언급했다며

일축한다. 본인이 알기로는 실재 라스카사스는 흑인 노예제에 대해 찬성했으며 이후 그런 입장을 바꿨다

고는 하지만 이는 확실하게 증명되지 않았다 한다. 어쨌든 타자화의 해제를 대체제의 타자화로 매꿨다는

점에서 매우 씁쓸한 결말이라고 할 수 밖에 없겠다.

다시 한번 언급하지만 이 작품은 사건의 '재현'이 아닌 '재구성'이다. 작품에 나온 내용만으로 당시 논

쟁의 전모를 파악하지 말고 다른 역사서를 찾아봄으로 이해하는게 필요할 듯 하다. 일단 역사의 '재구성'

이라는 면에서는 나름 괜찮은 작품이라 생각한다.
http://costa.egloos.com2010-10-08T12:08:150.3810

덧글

  • 한단인 2010/10/08 22:11 # 답글

    바야돌리드 논쟁이 벌어졌을 당시의 아메리카의 인디오 인구가 전염병으로 '막' 격감하던 시기인지 아니면 격감하고 있던 시대인지는 문외한이라 정확히는 잘 모르겠는데(아마도 스페인인과 접촉한지 몇십년이 흐른 그 시점에서는 꽤나 격감한 상태였던게 아닌가 싶긴 하지만..) 만약 이미 격감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인디오를 인간으로 인정하든, 하지 않든 어차피 흑인 노예를 데려와야하는 상황일텐데 소설에서는 혹 그런 얘기가 언급되어 있는지요?
  • 소시민 2010/10/09 14:38 #

    일단 식민지 농장주를 대표해서 온 기사 둘이 인디오들이 질병에 약해 계속 줄어들어가고 있어 노동력을

    구하기 힘들다고 언급을 합니다. 직접적으로 명시되 있지 않지만 추기경의 결론은 그런 현실적인 고려 또한

    담겨있지 않을까 싶네요. 물론 이 작품은 역사의 한 단면을 부각시킨 것이라 이에 얽힌 복잡한 배경은 다른

    자료를 찾아 알아봐야 할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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