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메이지 유신 정권의 영국 왕자에 대한 정화 의식 책에 관한 여러 잡다한 것들

막말 일본에 팽배하게 퍼진 양이론을 비판한 후쿠자와 유키치는 새로 집권한 유신 세력 또한 양이론자라며 비판적 시각

을 견지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로서 아래 사건을 드는데...

... 내가 메이지 정부를 양이 정부라고 생각한 것은 전혀 근거  없는 게 아니다. 그런 식으로 우려할 만한 증거가 있었다.

우선 그 중 하나를 말해보겠다. 왕정 유신이 되고 메이지 원년인지 2년인지는 잊었지만.(메이지 2년의 일이라고 주석 

설명됨) 영국의 왕자가 일본에 와서 도쿄 성을 방문하게 되었다. 표면상으로는 외국 귀빈을 접대하는 것이니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불결한 외국인을 황성에 들어오게 하는 것은 아무래도 곤란하다는 의견이 정부 각처에서 빗발쳤다. 

그래서 영국 왕자의 입성 때 니주바시 (궁성의 정문과 중문 사이에 설치한 철교의 통칭) 위에서 결신의 불 (신에 바치는 

종이나 천을 가늘게 오려 나무에 끼운 것인 고헤이로 사람의 몸을 문질러 물 대용으로 일체의 부정불결을 씻어내는 것)

을 거행하고 안으로 들여보낸 적이 있다. 이적놈들은 부정함으로 더러움을 씻어내 몸을 깨끗이 하고 들여보낸다는 뜻일 

것이다. 그런데 이 일이 웃음거리가 되었다. 당시 미국의 대리 공사였던 포트먼이라는 사람은 매번 워싱턴 정부에 자신

의 근무지 상황을 보고했다. 하지만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보고서는 대통령이 보지 않는다. 반면 공사 쪽에서는 그 보고

서를 봐주는 것이 명예인 셈이다. 그래서 이 공사는 이번의 영국 왕자 입성 때 재계의식을 거행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크게 기뻐했다. 마침 잘 되었다. 이 기담을 보고하면 분명히 대통령이 봐줄 거라며 , 그 표지에 <에든버러 왕자의 부정

을 제거함>이라는 기상천외한 제목을 붙였다 ...

... 당시 미국 공사관의 통역을 담당하고 있던 세키는 나에게 와서 "얼마 전에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는데 정말 웃기지 않

아?" 하며, 그 사실은 물론이고 편지의 내용까지 소상히 이야기해줬다. 어찌나 한심하던지, 나는 그 얘길 듣고 웃음이 나

오기는커녕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

                                                                                                           <후쿠자와 유키치 자서전> 231 ~ 232P

일본 정부야 나름 자신 들의 일반적인 관념에 따라 시행한 것이지만 외부인에게는 매우 당혹스럽게 느껴졌을 것이다.

비서양권의 서구화의 대표 사례로 꼽히는 메이지 유신 정권 또한 초기에는 이런 배타적인 행동을 했다는 점이 놀랍기도

하다.

덧글

  • 네비아찌 2010/07/27 13:33 # 답글

    영국 쪽에서 내막을 알았다면 큰 외교 문제가 되었을 수도 있었겠네요.
  • 소시민 2010/07/27 22:45 #

    책에는 이에 대한 언급이 없어 잘은 모르겠지만 그냥 웃고 지나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
  • Esperos 2010/07/27 14:20 # 답글

    프레이저의 황금가지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적혀 있습니다. 티벳에서던가요, 지식인층을 모아 서구견학단을 꾸려 보냈다고 합니다. 서구를 두루 돌아다니며 견문한 것까지는 좋은데, 서구사회를 너무 돌아다녔기 때문에 부정이 극도로 끼어서 어지간한 정화의식으로는 어림도 없다는 생각들을 했답니다. 그래서 견학단이 본국으로 돌아오자, (상징적인 의미에서) 다시 태어나는 의식을 거행했다는군요. 부정을 씻을 수 없으니 아예 새 육신을 주어야 한다는 거죠 (____)
  • 소시민 2010/07/27 22:46 #

    그런 일이 있었군요. <황금가지>는 이름만 들었지 여태 읽어보지 못했네요. 기회가 되면 꼭 읽어

    봐야겠습니다. 좋은 정보 주신것 감사드립니다. ^^
  • 들꽃향기 2010/07/30 02:27 # 답글

    기독교에 대해서 메이지 정부가 초기에 보였던 반응을 상기한다면 후쿠자와의 예민함도 아주 이해는 못할바는 아닌 것 같습니다. ㅎㅎ
  • 소시민 2010/07/31 00:29 #

    후쿠자와로서는 당시에 정말 가슴 졸였겠죠. 결국은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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