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일본이 서구화에 성공한 이유 중 하나는 책에 관한 여러 잡다한 것들

조선과는 달리 청의 종주권 아래에 있지 않아서 인듯 싶다.

임오군란 부터 청일전쟁 패배에 이르기까지 10여년 동안 위안스카이는 급진개화파 뿐만 아니라 온건개화파

역시 적대시 하고 리훙장은 조선의 주미공사 파견 당시 '영약3단' 이라는 조건을 붙여 엄연한 주권국인 조선의

외교활동을 제약하려는 등 청은 조선의 내정에 사사건건 간섭했다. 

그리고 청 조정 내에선 이런 주장도 나왔다 하니

... 청국의 양무파 관료들은 조선의 개화에 회의적이었다. 그들은 조선의 존재를 불이 번지는 한 가운데 섶과 같은

, 소위 '화적신지세 火積薪之勢'로 간주했다. 조선을 방치할 경우 청국 자체의 안전에 큰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고

본 것이다. 이런 입장을 대표한 인물이 바로 청국의 초대 주일공사를 지낸 허루장이었다. 그는 조청관계를 명목상의

조공관계에서 실질적인 지배관계로 바꿔 조선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정관원인 장젠의 경우

는 더욱 과격했다. 그는 아예 차제에 조선왕조를 폐지하고 청국이 직접통치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

                                                                                                                      <개화파 열전>71P ~72P  

ㄷㄷㄷ

비록 청은 서구 열강과의 수교 등 조선의 힘을 어느 정도 키워주는 방향으로 유도하는게 좋다는 리훙장의 판단대로

대조선정책을 수행했지만 이는 언제까지나 청국의 안정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조선이 청의 생각과는 어긋나는 방향

으로 개화정책을 추진한다면 극단적인 수단까지 나올 수도 있음을 나타내는 문구라 할 수 있다.

리훙장 역시 위에 언급한 '영약3단'을 생각하면 조선의 완전한 개화에는 제재를 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확실히 조선의 위정자들은 일본에는 없는 또 하나의 커다란 개화의 장애물에 골머리를 앓았을듯 하다.                                                                                                                

덧글

  • 들꽃향기 2009/12/02 10:40 # 답글

    그리고 자신의 안위를 위해 그 청을 불러들여 200년간 조공체제 하에서도 용납치 않았던 '내정간섭'을 하게 만든 한명의 원흉을 잊을 수도 없겠죠.
  • 소시민 2009/12/03 18:28 #

    조선의 마지막 척족 세도를 이끈 그 분을 말씀하시는거군요.
  • 위장효과 2009/12/02 10:46 # 답글

    지금의 중국 지도부도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합니다. 2800년간의 역사 이래 한반도가 이토록 자신들의 지배권에서 벗어난 시기도 드무니까요. (한반도의 삼국시대때야 중국 역사 최대의 혼란기인 5대 16국, 남북조 시대였으니 남 신경쓸 틈도 없고)
  • 소시민 2009/12/03 18:30 #

    그 때와 같은 조공체제가 다시 들어오는 것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한참 뒤로 돌리는

    일이겠죠.
  • ㄱㄷㅍㄷㅍ 2009/12/02 15:44 # 삭제 답글

    그것보다는 당시 조선수뇌부의 탓이 크죠, 천진조약후의 평화의 10년 동안 근대화는 커녕 안으로 곪기만 하고 , 고종에게 왕실재산과 국가 예산좀 분리하자하니 분기탱천... 동학운동도 엄밀히 외세저항운동이 아니라 탐관오리의 수탈에의한 농민봉기 였습니다. 민비도 지금에야 명성황후니 하지 실제는 정권유지에만 골몰했죠
  • 소시민 2009/12/03 18:37 #

    물론 가장 큰 원인은 ㄱㄷㅍㄷㅍ 님께서 말씀하신대로입니다. 하지만 천진조약 이후 평화

    의 10년 동안 청의 간섭은 상당한 수준이었습니다. 조선 정부가 마음 먹고 근대화를 추진하

    려해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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