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위의 남작 책리뷰

나무 위의 남작나무 위의 남작 - 8점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민음사

1.몇 달 전 읽은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의 몽환적인 분위기가 워낙 인상적이라 작가의 또 다른

작품 <나무 위의 남작>에도 관심이 갔다. 게다가 '나무 위'라는 인간 사회 밖의 공간에서 자연과 문명 사이에서

조화를 이룬 인물이 주인공이라니! 많은 기대를 안고 책을 찾아 읽어보았다.

2.이 작품은 12살때 집안의 권위와 체면을 중시하는 분위기에 염증을 느껴 나무 위에 올라간 이래 평생을 나무

위에서 산 남작 가문의 장남 '코지모'의 일대기다. 이는 '인간 사회'에 남아 살아간 동생이 회고하는 방식으

로, 즉 1인칭 관찰자 시점을 통해 서술된다. 그래서인지 작품은 '코지모'의 내면 묘사보다는 '코지모'의 행위

묘사에 추가 기울어진 모습이다. 중심 서사의 틀이 빈약하고 어느정도 난해한 모습을 지닌 <보이지 않는 도시들

>과는 달리 이 작품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코지모의 변화가 기술됨으로 서사적인 측면이 강하고 상당히 쉽게 잘

읽혀지는 편이다. 무슨 의도로 나온지는 모르겠지만 중간 중간 이탈리아어의 발음을 그대로 옮긴 어구가 등장하

는데 개인적으로는 그냥 한글로 번역하는 편이 나았다고 본다.

3.이 작품에서는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서 보인 비현실적인 몽환적인 분위기는 찾아 볼 수 없다. <나무 위의

남작>에 묘사된 '코지모'의 나무 위 생활은 현실화 될 수 있는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는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고 많은 어려움과 위험에 노출되기 때문에 실제 행동으로 옮기기는 매우 어렵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는 더더

욱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코지모'의 나무 위 생활은 충분히 참신하고 낭만적으로 느껴진다. 초반에는 폭우 등

집 밖에 노출됨으로 겪을 수 밖에 없는 혹독한 기상 조건과 음식과 의복문제 해결이라는 어려움이 닥치지만 몇

년이 지난 후에는 익숙해진 모습을 보인다.

4.집안의 권위적인 분위기에 저항하여 '나무 위'라는 인간 사회 외부의 공간으로 떠난 '코지모'는 언듯 인간 사

호에 환멸을 느껴 노틸러스 호에 몸을 실어 심해로 들어감으로 인간 사회를 떠난 <해저 2만리>의 '네모 선

장'과 유사한 인물로 보인다. 하지만 '코지모'는 '나무 아래'의 인간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하는 모습을 보인다.

농부와 장인들의 심부름을 도와주고 책장수에게서 책을 얻어 읽으며 때때로 주민들을 지도하는 등 코지모는 '나

무 위'에서 은둔하지 않는다. 인간 사회와의 교류를 완전히 끊은 '네모 선장'과는 판이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다. 코지모는 '권위적인 사회의 단면'을 거부하는 것이지 '인간 사회'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올라'라는 평생을 꿈꿔온 연인과의 사랑의 묘사에 대해선 본인은 아무래도 '코지모'의 입장에 마음이 간다.

'비올라'의 자유로움은 200여년 뒤의 한국 남성들에게는 쉽게 받아들여지기 힘들어 보인다. 이 작품에서도 부모

란 아무리 '엇나가는' 자식이라도 사랑할 수 밖에 없고 자식 역시 부모를 잊기 힘들다는 가족 간의 애정이 잘 드

러난다. 각자의 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의 애정 교류는 은근히 독자의 마음을 울린다.

5. 코지모가 '나무 위'인생을 살아온 18세기 중반에서 19세기 초반이라는 시기는 세계사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

중 하나일 것이다. 계몽 사상의 발전과 프랑스 혁명, 그리고 나폴레옹 전쟁으로 이루어지는 격동기는 코지모에

게도 큰 영향을 미친다. 루소, 디드로와 서신 교류를 하며 '백과전서'를 틈틈히 읽은 코지모는 스페인 올리바사

사의 추방자들에게 계몽 사상을 설명하고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뒤에는 세금에 시달리는 농민들의 항쟁을 주도하

고 이탈리아에 진군한 프랑스 군대에 협력한다. 이러한 코지모에게 나폴레옹의 패망(물론 전쟁물자 징발 등 나폴

레옹 군의 변질된 모습에 대해선 코지모는 안타까운 심정을 느끼는듯 하지만)과 '빈 체제'라는 역사의 반동은

큰 상심과 무기력을 가져왔을 듯 하다. 책 소개에 언급된 코지모의 자연 친화적 성격은 그리 두드러지게 드러나

지는 않다. 하지만 코지모가 저술한 헌법 개요인 <남자, 여자, 어린이, 가축과 새와 물고기와 곤충을 포함한 들

짐승, 키 큰 나무, 야채, 잡초를 망라한 식물의 권리 선언이 들어있는 공화정 도시를 위한 헌법 개요>의 존재

를 통해 그의 시대를 앞선 환경 친화적인 사고를 확인할 수 있다. 비록 제목만 언급될 뿐 구체적인 내용은 서술

되지 않았지만 솔직히 현재도 이런 생각을 가질 사람이 흔치 않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감명 깊은 대목이었다.

6. 코지모는 결국 죽어서도 땅으로 내려가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이런 완고한 원칙은 '나무 아래'의 인간들을

사랑하는 마음과 함께 한다. 인간 사회 밖으로 나갔음에도 사회에 남은 인간들을 잊지 않은 코지모는 정말 매력

적인 인물이다.



http://costa.egloos.com2009-10-20T03:20:040.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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