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예보의 첼리스트 책리뷰

사라예보의 첼리스트사라예보의 첼리스트 - 8점
스티븐 갤러웨이 지음, 우달임 옮김/문학동네

전쟁은 그에 연관된 수많은 사람들의 정신과 삶의 기반을 파괴한다. 군사들간 만의 전투가 아닌 민간인들의 피해

가 크게 커진 20세기 부터의 전쟁 양상에서는 이러한 피해가 더욱 더 심해졌다. 1990년대 초의 유고슬라비아 내

전도 그러한 '더러운' 전쟁 중 하나인 듯 하다. 스티븐 갤러웨이의 소설 <사라예보의 첼리스트>는 유고 내전 당

시 세르비아계 반군의 보스니아 수도 사라예보 포위로 인해 평범했던 사라예보 주민들이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

신음하는 모습을 담고있다.

소설 속에 묘사된 사라예보의 모습은 매우 참혹하다. 적들이 도시를 포위함으로 전기, 수도 등 공공재의 공급

은 끊어지거나 자유롭지 못하게 되고 빵과 같은 기본적인 식량도 구하기 힘들게 됬다. 이런 물적인 결핍도 결핍

이지만 중요한 것은 사라예보 주민들의 '인간성'이 허물어져 간다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포위

군 저격수의 총탄이나 박격포탄으로 인해 무고한 시민들이 죽어나가는게 일상이 된 도시에서 사람들 간의 교류

가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게 이해되면서도 참담한 느낌이 들게 한다. 내분에 빠진 사라예보 방위군과 전쟁통에 외

부에서 오는 물품 공급을 독점함으로 오히려 재산을 증식한 자들 그리고 특종사진에만 관심있는 외신 사진기자

등 사라예보 시민의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자들이 오히려 사라예보 시민들의 마음에 비수를 꼿는 불편한 모습도

보인다.

'첼리스트'라는 직업이 타이틀에 걸려있다. 작가는 포위군의 박격포 포격으로 인해 사망한 22명의 사라예보 시

민들을 기리기 22일 동안 '아다지오 G 단조'를 연주한 베드란 스마일로비치라는 첼리스트의 실제 사례에서 영감

을 얻어 작품에 '첼리스트'를 등장시켰다. 폭격으로 인해 사망한 22명의 시민들을 기리기에 '아다지오'를 연주

하는 모습은 작품에 등장하는 '첼리스트'와 베드란 스마일로비치가 서로 동일하다. 하지만 작품 내에서 '첼리스

트'의 이름은 단 한번도 나오지 않는다. 사실 '첼리스트'의 비중 자체도 상당히 적은 편이다. '첼리스트'의 연

주가 사라예보의 시민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었다는 것 자체는 이해가 됬지만 작품에서 나타난 비중 만으로는

이미지 강화가 잘 되지 않는다.

이 작품은 '애로', '케난', '드라간'이라는 세 사라예보 시민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한 인물의 이

야기가 서술된 뒤 다른 인물이 이야기로 넘어가는 것이 반복됨으로 이야기가 이어진다. 각각 사격선수(애로),

일반 회사 직원(케난), 빵집 종업원(드라간)으로 평화로운 삶을 살아온 한 소시민이었던 그들의 행복은 전쟁으

로 인해 무너진다. 애로는 사라예보 방위군의 저격수가 되어 포위군들을 살상하게 되고 케난과 드라간은 각각

물과 빵을 구하기 위해 언제 총탄과 포탄이 날아올지 모르는 야외로 나간다. 애로는 계속되는 살상에 회의감을

느끼고 케난과 드라간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나오는 행복으로 가득했던 전쟁 이전의 사라예보를 그리워한다. 개

인적으로 '첼리스트'도 이들과 같은 비중의 에피소드를 할당해 그의 심리 묘사를 강화했으면 좋았을거라는 생각

도 들지만 그러면 알게 모르게 작품의 분위기의 균형이 무너질 수도 있기에 지금 이 자체로도 좋다고 본다.

주목할만한 것은 작품 내에서 사라예보를 포위하는 세르비아계 반군이 단지 '그 들'이라고만 표현된다는 점이

다. 작품 내 어디에서도 이 들이 '세르비아계 반군'임을 알려주는 서술을 찾아볼 수 없다. 개인적으로 작가가

이렇게 묘사한 이유는 그들이 누구인가라고 밝히는 것을 떠나서 선량한 민간인들에게 고통을 준다는 사실 자체

가 본질이라고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실 이 작품은 전쟁이 일어나게 된 배경과 포위군의 생각에 대

해선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즉 피해자인 사라예보 시민들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묘사하는데만 초점이 맞쳐줘 있

다. 이러한 서술은 지나치게 당시 정황에 대한 판단을 단순화한다는 문제점도 있지만(어쩔 수 없이 전쟁에 '끌

려온' 세르비아계 반군 병사의 이야기를 넣어보는 것은 어땠을까? 하긴 이것도 앞서 말한 '첼리스트'의 경우와

같이 작품 분위기의 균형을 깨뜨릴 가능성이 있긴 하다.)포위군의 입장을 서술하는게 자칫 작품의 주제의식을 흐

트려 놓을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하지 않으면 안된다.

유고슬라비아 내전은 1995년 종결되었지만 소설 내의 사라예보 포위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를 무력

한 시민들이 어떻게 뚫고 나갈 수 있을까? 작품 내에서 간간히 보이는 아주 자그마한 희망과 과거의 행복했

던 사라예보를 상기하며 전쟁의 끝난 뒤 도시를 재건해야한다는 심리 묘사가 나타나기는 하지만 이는 희망사

항에만 그칠 뿐 돌파구를 마련할 폭발적인 힘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안타까운 일이다. 거대한 역

사적 광풍에 무력한 힘없는 시민의 모습이 여기서도 느껴진다. 물론 오랜 세월 동안 시민들의 울분과 더 나

사회를 위한 열망이 응집된 결과물이 폭발하는 순간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이 작품에서 그런걸 묘사하기에

는 너무 범위가 좁아보인다.

이 작품은 참신한 맛을 가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러한 전형적인 모습에서도 평범한 한 개인이 전쟁이라는 아비규

환속에서 얼마나 비참해지는가는 생생히 잘 전달해주고 있다. 한번 쯤 읽어볼만할 작품이다.


http://costa.egloos.com2009-06-29T09:42:390.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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