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벨라 비숍이 쓴 <양자강을 가로질러 중국을 보다>에 실린 두 가지 서술 비판 책에 관한 여러 잡다한 것들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이라는 조선 여행서로 우리에게 잘알려진 19세기 후반기에 활동한 여행가 이사벨라 비숍.

그녀는 조선 뿐만 아니라 이웃 나라 '청' 제국도 여행했다. 이 중 사천성등 양자강 유역을 탐사한 내용이 <양자강을 가로

질러 중국을 보다>라는 책으로 출판됬다. 개인적으로 책을 읽으면서 이의를 제기하고 싶은 서술을 두 가지 발견했다.

하루에 세 번 이처럼 형편없는 식사를 하면서 이 불쌍한 사나이들은 아무런 불평도 없이 하루 열두 시간의 고된
노동을
참아냈다. 물론 이들에게는 일을 회피하려는 마음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여행하면서 바라본 이들의
고통과 이를 이겨내
는 인내심, 성실함과 낙천적인 태도에 나는 동정심을 느끼는 정도가 아니라 충심으로 찬사를
보내고 싶었다. 아편만 피우
지 않았어도 지금보다 훨씬 더 잘 먹고 잘 입을 수 있었겠지만 아편이 아니고는 그
고단함 뒤에 밤마다 맞는 휴식을 무엇
으로 채울 수 있겠는가?
                                                                                                           -  양자강을 가로질러 중국을 보다 214P

거친 양자강 상류를 항해하는 배를 견인하는 역할을 하는 견부들의 고단함을 보면서 느낀 저자의 안타까운 심정을

드러내는 부분이다. 그러면서 그들 사이에 만연한 아편 흡연을 개탄하면서도 근심을 잊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피운다며 그들의 처지를 동정하고 있다. 사실 이 책에서는 아편에 중독된 중국인들의 모습이 계속 등장하며 저자는 아

예 별도의 장을 만들어 중국 사회 전체에 만연한 아편중독의 양상과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정리하고 아편에

반대한다는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힌다.

그런데 정작 그 아편이 중국인들에게 널리 퍼지게 된 계기는 서술되 있지 않다. 이사벨라 비숍은 조국인 영국이

무역적자현상을 타개하기 위해 전쟁까지 벌이면서 중국에 아편을 팔음으로 아편이 중국에 널리 퍼졌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은 것이다.

이와 같은 저자의 태도는 많은 시사점을 준다. 과연 우리도 타국의 역사와 생활상을 기술할 때 우리의 잘못으로

큰 상처를 입은타국의 모습 역시 그대로 서술할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문자와 문학의 이해야말로 중국인이 출신 성분이나 빈부에 차별받지 않고 관직에 나아가 명예와 봉록을 획득할
수 있는 유
일한 방법이다. 이런 점에서 볼 떄 중국은 실재로 세계에서 가장 민주적인 나라의 하나인 셈이다.

                                                                                                      - 양자강을 가로질러 중국을 보다 354P

그 유일한 방법이란 과거제도를 일컫는다. 개인적으로는 과거제도의 존재가 중국이 세계에서 가장 민주적인 나라

중 하나인 근거가 된다는게 잘 이해가 안된다. 원칙상으로 출신 성분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해서 이것이 실질적으로

하위 계층의 관직 진출로 이어진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가난한 농민이나 사공은 하루하루 입에

풀칠 하기 바쁜데 언제 공부를 해 관직에 나아간다는 말인가? 조선 역시 원칙적으로 농민에게도 과거시험을 볼 수

있도록 했지만 이것이 농민들의 활발한 관직진출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그리고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선거를 통해 시민들이 통치자를 교체할 수 있으며 평상시에도 탄압없는 자유로운 의견 개진으로 형성된

여론을 통해 정치운영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절대왕정체제이며 관료들의 부패가 극에 달한 당시 청 제국은

그러한 나라가 아니었다. 비숍의 이 주장은 정말 납득이 안된다. 

그래도 책 자체는 19세기 말 양자강 유역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해 주니 충분한 가치가 있다.


덧글

  • 갑옷을 그리는 젊은이 2009/06/02 21:45 # 답글

    동감합니다. 민주적이라는 건 사실 말 그대로 백성들이 주인이 되는 건데... ㅎㅎ;; 비숍이 책을 썼던 당시의 관점으로는 과거제도도 민주주의적으로 보였나봅니다..ㅎㅎ;;
  • 소시민 2009/06/03 18:32 #

    밑의 우공님 말씀이 일리가 있는 듯 합니다.
  • 愚公 2009/06/03 10:37 # 답글

    당대에 영국에서는 아직 관직시험이 정착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18세기까지만 해도 유럽 지식인들이 중국의 과거제도를 높이 평가했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19세기에도 시험제도가 완전히 정착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여기에는 당대 유럽인들이 중국의 관직 임용제도(추천제나 세습제식의 임용제도 역시 존재한 )를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것도 배경으로 작용한 것 같습니다.
  • 소시민 2009/06/03 18:32 #

    저도 계몽주의 시대 유럽 지식인들이 유학 등 중국 문명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는걸 단편적으로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19세기 말까지도 유럽에 관직시험제가 정착되지 않았군요... 우공님 생각이 일리가 있는 듯 합니다. 사실 비숍도 이 책

    에서 유럽권 학자의 중국연구서을 읽었다고는 하지만 중국 현지의 고전은 잘 읽지 않은 것 같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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