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촌수필 책리뷰

관촌수필관촌수필 - 8점
이문구 지음/문학과지성사

이문구라는 이름은 고등학교 시절 모의고사 지문에서 종종 봤다. 몇년 전 일이라 정확히는 기억나진 않지만 박정

희 전 대통령의 음악재능(?)이 깃든 새마을운동가가 아침에 울러펴질 때 작품 속의 인물이 걸죽한 사투리로 불평

을 터뜨리며 계속 잠을 청하려는 내용의 지문을 보고 흥미로워 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이문구의 작품을 본격

적으로 접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저자 자신의 농촌에서의 유년기의 회고담적 성격을 띈 대표작 '관촌수필'을

통해 이문구라는 작가의 토속적 색채가 본인의 마음 속에 다시 되살아났다.

'관촌수필'은 '일락서산', '화무십일', '행운유수', '녹수청산', '공산토월', '관산추정', '여요주서', '월

곡후야' 라는 8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연작소설이다. 주목할 점은 각각의 단편이 연결되면 하나의 장편으로 완성

되는(그럼으로 단편들은 장편의 한 장으로 역할을 하는) '난장이가 쏘아올리는 작은 공', '젊은 날의 초상'과

같은 작품과는 달리 '관촌수필'의 단편들은 하나로 묶여 통일된 서사를 이루지 않는다. 저자가 유년시절 당시

가깝게 지낸 이웃의 이야기가 실린 단편들은 제 각기 맡은 인물 소개에 최적화 되어 있어 서로 간의 서사적인 접

점을 찾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단편집이 아닌 하나의 완성된 연작소설이라 불리는 것은 8편의

단편을 다 읽음으로 비로소 완성되는 저자의 유년시절 이웃들과 농촌공동체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정서를 독자들

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앞부분 4편의 단편은 저자의 유년기인 1940년대 후반~ 1950년대 중반을 중점적으로 다루는데 중

간 두편은 유년시절의 추억과 저자가 서울에 거주하는 성인으로 성장한 1960년대 중반~ 1970년대 중반의 비중

이 서로 반반이고 급기야는 끝부분 두편에는 단편에서 다루는 인물과의 유년시절의 기억을 최소화시키고 저자가

작품을 낸 시기인 1970년대 중반에 일어난 사건을 다루고 있다. 이러한 시간적 배경의 변화는 앞에 언급한 단편

간의 연속성 부재를 극복하기 위한 작가의 장치가 아닐까 싶다.

일반적으로 이 작품은 현장감이 살아있는 충청도 사투리의 풍부함으로 우리말을 알기 위한 자료로서 가치가 충분

하다고 인식된다. 이 책을 읽기 위해 국어사전을 곁에 두었다는 분도 있으니 만큼 농촌 사투리는 표준어를 사용

하는 현대인들에게 매우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사투리의 수준이 내용이해를 어렵게 만들 만큼은 아니

니 큰 부담을 느끼지 않아도 될것이다.

다른 문화권도 그러했지만 지난 세기 100년 동안의 변화는 그 이전까지 지속되던 전통을 해체시켰다. 관촌수필

의 배경인 1940년대 후반 ~ 1950년대 중반의 관촌과 1970년대 초중반의 관촌을 비교하면 이러한 변화양상을 생

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1940년대 후반 ~ 1950년대 중반의 관촌은 철도와 유성기 같은 근대의 문물이 유입되었

으나 유교 질서와 농촌 공동체라는 전통 체제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었다. 저자에게 양반가의 후예임을 강조

하고 천자문을 가르치는 망건을 착용한 구 왕조의 지배계층의 최후세대인 할아버지와 옹점이와 철호라는 저자의

집의 몸종의 존재, 도깨비불에 대한 미신적 믿음 등 수천년 동안 자생적으로 구축된 토속적인 문화의 풍경이 지

금으로부터 불과 60년전까지 살아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소년이 30대 성년이 됬을 때 관촌은 변화했다. '근대

화'의 물결은 관촌의 전통유산을 집어삼키고 슬라이트 지붕, 새마을운동, 국민교육헌장, 야생동물보호법 등을

내뱉었다. '근대화'로 인해 농촌의 소득이 증대되고 농민의 자신감을 돋구었다는 성과는 저자에게 중요하지 않

다. 저자는 유년의 유산이 급격히 떠밀려 사라진 것에 대해 슬퍼한다. 그렇다고 감정을 직설적으로 드러내지는

않는다. 담담한 어조로 이제는 돌아오지 못할 공동체에서 꽃피어난 친구들과의 추억을 풀어낼 뿐이다.

'관촌수필'은 일반적으로 사라진 토속적인 농촌의 모습을 그리워하며 이를 유발한 '근대화'에 비판적인 성찰을

내비친다고 평가받는다. 그런데 이 작품만으로는 저자가 '근대화'에 적극적으로 반기를 들었다고 볼 수는 없

다. 그는 그저 사라져버린 옛 공동체와 친구를 그리워할 뿐이다. 저자가 이후에 내놓은 '장곡리 고욤나무'라는

작품에서는 정부의 농촌을 외면한 정책과 우루과이라운드로 인한 농산물 개방등로 인한 농촌 황폐화를 비관해 자

살한 기출이라는 노인의 자살을 다루면서 강한어조로 정치인과 재야 인사들을 비판하는 모습이 발견되지만 그로

부터 14년 전에 쓰여진 '관촌수필'에서는 이러한 분노가 보이지 않는다. 아직까지는 옛 모습의 부재에 대한 아

쉬움만을 보일 듯 그 이상의 현실비판적 모습을 보인다고는 할 수 없다.

이 작품은 거시적인 현실문제의식의 발현에서 가치가 있는게 아닌 공동체 속의 사람들 간의 삶의 풍경을 잔잔하

게 그려낸데에서 가치가 있다. 사실 저자의 유년시절의 농촌공동체에서도 가부장제적인 가정구조에서 희생된 여

인이 있었고 비록 몸이 성치 않다는 이유로 마을의 단체노동에서 빠지긴 하지만 개와 돼지를 잡는 일은 확실히

스스로 나선 한 공동체 구성원에 대한 멸시라는 '야만'이 존재했다. 하지만 어느 문화나 체제에서나 서로간의

소박한 관계는 작지만 위대하다. '관촌수필'의 메세지는 바로 여기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http://costa.egloos.com2009-02-14T10:32:350.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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