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책리뷰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 8점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민음사

다니엘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 출간 이후 <파리대왕>, <신비의 섬> 등 외딴 무인도에 표류한 인간의 모습을

그린 소설들이 계속하여 등장했다. 이러한 와중에 프랑스의 작가 미셸 트루니에는 이들 소설의 원형인 <로빈슨

크루소>의 주제의식을 재해석해 새로운 이야기로 재탄생시켰는데 그 결과물이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이다.

본인은 <로빈슨 크루소>를 읽은 적이 없다. 하지만 주인공 로빈슨 크루소가 표류한 무인도를 '문명화'된 삶의

공간으로 가꾸어나간다는 내용은 익히 들어 알고있다.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도 중반까지는 원작의 모습을 계

승한다. 하지만 중반 이후부터는 그때까지 이루어온 문명의 산물이 붕괴되고 이에 대치되는 반문명적인 모습이

그려진다. 로빈슨을 새로운 삶으로 이끈자가 바로 책의 타이틀을 장식하는 이름, '야만인' 방드르디다.

이 작품에서 인상깊게 다루는 소재는 '고독', '자유', 그리고 '시간'이다.

태평양의 외딴 섬에 표류한 로빈슨은 혼자다. <신비의 섬>에서 서로 간에 협력하여 무인도를 문명화된 삶의 공

간으로 만드는 모습이나 <파리대왕>에서 랠프와 잭의 의견 대립이 종국에는 큰 파국을 맞이하게 되는 모습이나

다수의 사람이 서로 소통하는 와중에서 발생한 전개인 반면 이 작품에선 방드르디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섬에 존

재하는 인간이라곤 로빈슨 혼자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로빈슨은 홀로 나름대로의 문명을 건설하려 하지만 고독

이라는 상태를 좀 처럼 떨쳐낼 수 없다.그는 지킬사람이 단 하나뿐인 다수에 대한 법령을 제정하고 섬을 어머니

로 급기야는 섬을 관계를 가질 이성으로 느낀다. 그 때 정말 우연히 방드르디를 만나고 그와 같이 살아가게 된

다.

사실 문명화된 터전의 붕괴 이후의 로빈슨이 살아가는 모습이 자연에 동화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방

드르디 이전의 모습이 더 자연과 맞닿아 보인다. 물론 이는 정복욕 혹은 자연의 인간화에서 나온 것이지만 말이

다. 책 뒷표지의 책에 대한 설명에는 인간의 신화적 이미지가 원초적 기초로 회귀하는 과정을 그렸다고 나와있는

데 내 빈약한 철학 지식으로는 뭐라 설명하기가 힘들다. OTL 하지만 한 가지 인상에 남은 것이라면 그것은 바로

'자유'다. 결말 부분에 방드르디는 로빈슨을 '배반'한 것 같아보인다. 글쌔 이 배반은 로빈슨에겐 큰 상실을 가

져왔지만 이것이 방드르디 자신의 성격을 배반한 것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방드르디는 그저 자유인이다. 그는

로빈슨에게 복종하던 초반을 제외하면 무계획적으로 내키는데로 일을 벌어온 인물로 자신의 의지가 펼쳐지는 곳

이라면 그 곳이 외딴 섬이든 제국의 번영하는 도심이던 별 신경을 쓰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로빈슨도 우연찮

게 방드르디에 의해 문명이라는 족쇄에서 풀려나 자유를 얻은 것이고 이에 기뻐하며 종국에는 문명으로의 귀환

을 거부한 것이다.

시간이라는 문명사회의 당연하게 여겨지는 개념은 섬에서 해체된다. 이미 방드르디 이전 부터 로빈슨은 때때러

물시계의 작동을 중단시킴으로 주체적으로 시간으로부터 풀려나는 모습을 보인다. 물론 그 당시는 섬에서 문명인

의 모습을 잃지 않기 위해 다시 시간에 의해 지배되는 삶으로 복귀해야 했지만 방드르디에 의해 문명이 해체된

이후로는 시간은 사라진다. 찰나가 영원함이 되버린 것이다. 이런 변환에서 만족감을 느끼는 로빈슨에게 문명

이 측정한 섬에 표류한 지 28년 2개월 19일이라는 세월이 지났음을 일깨워 주는 것은 크나큰 공포다. 만약 로빈

슨이 표류한지 10년 안팎으로 지났을 때 문명과 재회했다면 어쩌면 그는 다시 문명의 품으로 돌아갔을지도 모르

겠다. 하지만 28년이라는 공백은 문명인으로 재조직 되기에는 너무나 늙은 몸을 남겼다. 로빈슨은 문명에서의

노쇠함으로 오는 상실감이 두려워 시간의 개념이 사라진 섬에서 계속 머물러 했을지도 모른다.

작품은 로빈슨의 표류생활을 전지적 작가시점에서 서술한 부분과 '항해일지'라는 장치로 로빈슨 스스로가 자신

의 내면을 풀어내는 부분으로 교차됨으로 구성된다. 행위 위주로 서술된 부분과 달리 '항해일지'를 통해 서술

된 로빈슨의 내면은 너무나 철학적이며 그에 따라 쉽게 읽혀지지 않는다. 이는 철학에 밝지 못한 독자에게는 난

해함을 그 반대의 경우에는 쾌락을 느낄 수 있는 양면을 가졌다. 작품의 서장에 나타나는 타로카드를 통한 주인

공의 운명을 암시하는 장면은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의 '열개의 인디언 인형'이 떠올리게 하는 인상적인 장치

다. 본인이 지금까지 접해온 민음사 전집 작품 중에서 가장 양이 많은 (60P 가량)해설은 작품을 다시 되짚어보

는데 도움이 된다.

투르니에는 <로빈슨 크루소>만을 해체하고 재구성 한게 아니다. 잔 다르크와 동방박사도 그의 해체, 재구성 대

상이 되었다 한다. 난해하지만 분명 흥미로운 시도의 결과물인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의 느낌을 그의 다른 시

도의 결과물에서도 얻을 수 있을지 기대된다.

http://costa.egloos.com2009-01-30T10:12:550.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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