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경철 교수의 <대항해시대>에 실린 흥미로운 내용 책에 관한 여러 잡다한 것들


다음의 내용은 최근에 읽은 주경철 교수의 저서 <대항해시대>에서 흥미로운 부분을 발췌한 것입니다.

주로 각주에서 뽑아와 단편적이고 근거가 부족한 내용이 일부 있습니다. 혹은 이미 알고 있는 내용

일수도 있습니다.

혹시 이 포스팅이 저작권법에 위반된다면 지적해주세요.


1. 1402년 조선에서 제작된 <혼일강리역대국대지도>에는 알렉산드리아 등대가 그려져 있다.

2. 16세기 중후반 포르투갈이 일본과 교역을 하면서 우리나라에도 일부 포르투갈인들이 들어왔다.

    비변사 내부 문서 <등록유초>에 '1604년 (선조 37년) 6월 15일 포르투갈 상인 주앙 멘데스가 

    통영에 표착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기록에 따르면 지완면제수라고 불린 주앙 멘데스는

    일본 무역선을 타고 가다 통영에 표착해 중국인 16명, 일본인 32명, 흑인 1명(!) 등과 

   조선 수군에 생포 되 조사를 받았다 한다. 이는 네덜란드의 벨테브레보다 23년 앞선 사례

3. 카브랄의 브라질 발견은 폭퐁우에 밀려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닌 포르투갈의 계획적인

   행위라는 주장이 있음. 카브랄의 항해기록을 보면 이와 같은 주장을 뒷받침하는 내용이

   한두가지가 아니고 포르투갈의 항해정보를 철저히 비밀에 부치는 정책을 생각하면 가능성이 있음

  (사실 이 내용 자체로는 근거가 부족하지만 각주의 형태로 책에 언급된 한계상 어쩔 수 없었는 듯)

4.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군사력 확보를 위해 일본 사무라이를 용병으로 활용하려 했음. 쇼군도 이에

   협조적인 자세를 보였으나 암본 학살사건 때 영국인을 돋던 사무라이들도 처형당해 흐지브지 됬다.

5. 페니키아 인들은 디아스보다 앞서 아프리카 일주를 한 듯하다. 그 증거는 항해하면서 태양을 오른쪽으로

   두고 리비아를 돌았다는 헤로도토스의 기록으로 이는 남반구에서 항해 할때 발생하는 현상이다,

6. 1757년 6월 플라시전투의 소식은 그 다음해 2월에야 영국에 알려졌다. 또한 1821년 나폴레옹의

   사망소식이 런던에 도착할때 까진 두달이 걸림 그러나 1963년 존 F 케네디의 암살소식은 미국인 68%가

   30분 내에 소식을 들었다는 점에서 통신의 발달이 급격히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7. 원양 항해를 하는데 배의 크기는 결코 핵심적인 요인이 아니다. 1610년 일본에서 멕시코의 아카풀코까지

    일본인이 그들의 정크선을 타고 항해 한 사례가 있음. 1851년에는 오사카에서 교토로 향하던 정크선이

    돛대와 키를 잃은체 17개월간 표류하다가 선원 17명 중 3명이 생존해 캘리포니아 연해에서 미국 선원들에게

    구출됨. 1515년 디에고가 인도제도로부터 소형갤리선을 타고오자 포르투갈 왕은 이 배를 불태우라 명령함

    (앞서도 말했둣이  포르투갈은 자국의 항해기술을 철저히 보안에 붙임 이런 작은배로도 원양항해가 가능하다는

    사례가 다른 유럽 국가의 귀에 들어가면 안되기 때문이다.)

8. 당시 선상규율은 매우 엄격했다. 살인사건이 일어날 때는 죽음을 당한 희생자와 범인의 등을 서로 마주댄체

   바다로  던짐으로 처벌. 싸움이 나서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게 한 경우에는 피를 흘리게 한 손을 마스트에 못 박고

   다른 손은 등 위에 묶음. 그래서 자신의 곤등을 찢게 한 뒤 마스트에서 손을 떼게 했다.

9. 드레이크는 골든하인드호의 화물을 모두 빼았은 뒤 선박을 스페인 측에 돌려주고 선장에게는 기념품과 약탈한 물품

    의 명세서( 선장 자신이 화물을 빼돌렸다는 추궁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다른 영국선박에게 나포될 때를

    대비해 안전통행증을 선사했다. -_-

10. 오늘 날 공공 지출중 군사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프랑스 17%, 미국 29%, 이스라엘 41%다, 그러나 과거에는

    루이 14세 때 프랑스 75%, 표트르 대제 때의 러시아 85%, 1650년대 내전기 중 영국 90%( 17세기 영국 내전이

    라면 청교도혁명으로 알고 있는데 이는 40년대에 찰스 1세 처형으로 끝난걸로 왜 50년대로 언급됬을까요? 일부

    왕당파의 산발적인 저항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90%의 공공지출을 군사비로 지출할 정도는 아닐텐데요.)

    등 엄청난 비중을 차지했다.

 11. 군복은 영국의 신형군(이 시초롤 알려졌지만 신형군의 군복도 100% 통일 된 것은 아님) 이전 까지는 일정치 않

    았고 심지어는 적군의 옷을 입는 경우도 있었음

 12. 당시 큰 배 한척을 건조하는데 필요한 목재의 양은 상상을 초월했다. 17세기의 조선업 입문서에 큰 배 한척을

    건조하는데 두 마리의 튼튼한 말이 끄는 수레 1800대 분의 목재가 필요하다라고 기술되 있고 좀바르트는 중간 크기

    의 전함 한척을 위해 완전히 자란 참나무 4000그루가 필요하다고 언급함

 13. 미국의 백인들은 호전적인 아메리카 원주민을 몰살시킬 목적으로 천연두 환자가 쓰던 담요를 선물하기도 했다.

 14. 포르투갈은 1560년에 인도 고아에 종교재판소를 설치했다 ㄷㄷㄷ

 15. 콜롭버스는 인디오들이 타락한 스페인어를 더듬거린다고 생각할 정도로 자기중심적이었다. 인디오들이 자신을

     카리바라고 하자 그는 이를 카니바로 듣고 칸이 사는 곳이 가까이 있다고 생각했다. 또는 개라는 뜻을 가진 카네

     라는 이탈리아어에 연관시켜 주변에 견두인이 있을 거라 보았다.

 16. 포르투갈어는 여러 아시아 지역에 퍼졌다. 1606년 가스파르 데 산베르나르라는 수사가 항해 중에 식수를 구하기

     위해 페르시아에 상륙할 때 그 곳 군사령관이 포르투갈어로 ' 신부님 이 먼 인디아에 어떤일로 오셨습니까?' 라고

     물었다. 또 1551년 영국인 토마스 윈덤은 베냉의 국왕과 포르투갈어로 대화할 수 있었다. 국왕은 어릴 적 부터

     포르투갈어를 알았다 한다.

 17. Pirate는 Typhoon과 함께 중국어가 포르투갈어로 들어갔다 영어로 들어온 단어다.( 타이푼은 이해가 가는데

     파이럿츠는 잘 연상이 안되네요...)

 18. 파라솔, 바나나, 망고, 코코넛, 모스퀴토, 버팔로 모두 포르투갈계 단어다.

 19. 파리에서 다게르가 사진술을 발명한 귀 2년만에 일본에 카메라가 들어왔다.

핑백

  • 지구마을 불꽃사파리 : 대항해시대: 해상 팽창과 근대 세계의 형성 2009-03-22 01:56:01 #

    ... 저자 : 주경철 출판사 : 서울대학교 출판부 평점 - ★★★★★ 우선은 두가지에 대해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자 합니다. 하나는 이 책을 저에게 소개해준 소시민님의 포스팅과 이런 책을 만드신 주경철 교수님께 인사드리고 싶습니다. 책의 두께는 상당했고 내용의 밀도가 높았지만 근래 읽었던 어느 책보다 흥미롭게 읽었고 지식도 ... more

덧글

  • 2008/11/30 16:0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소시민 2008/12/01 10:45 #

    다른 분께 초대장을 받아서 굳이 부탁드리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
  • 번동아제 2008/11/30 18:53 # 답글

    잘 읽었습니다. 2번의 경우는 제법 유명한 사건입니다. 주앙 멘데스가 타고 있던 배가 조선 수군의 정선 명령을 거부하고 발포로 대항하자, 통영을 중심으로 조선 수군의 주력이 출동해서 무력으로 나포했었죠. 이 배자체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대 캄보디아 무역물품을 운반하는 배였던데다 중국인, 일본인까지 탑승하고 있어서 당시에는 상당히 시끄러운 국제사건으로 취급되었습니다. 당시 교전 상황을 담은 당포전양승첩지도라는 그림도 두 점이나 남아 있습니다.
  • 소시민 2008/12/01 10:47 #

    그렇군요. 변동아제님 이글루를 둘러보니 좋은 포스팅이 많은 것 같아 링크 신고하겠습니다 ^^
  • 번동아제 2008/12/01 23:11 #

    네 저도 소시민님 이글루를 링크했습니다. 근데 제 닉은 변동이 아니고 번동이랍니다.
  • 행인1 2008/11/30 19:48 # 답글

    10. 왕당파가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등지에서 세력을 키우고 있었기 때문에 1651년까지 그들과 전쟁을 치뤘다고 하는군요. 그 이후에는 네덜란드와 전쟁을 치루었고요. 게다가 전국을 군정하에 두다보니 군사비가 그렇게 들지 않았을가 합니다.
  • 소시민 2008/12/01 10:48 #

    어느정도 의문이 풀린 것 같습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 oldman 2008/12/03 22:08 # 답글

    상당히 흥미로운 책이군요. 나중에 꼭 읽어보겠습니다.
    저도 이참에 링크 신고드립니다 ~
  • 소시민 2008/12/04 11:26 #

    네 분명 후회하시지 않을겁니다.
  • 自重自愛 2008/12/06 23:05 # 답글

    9. 아아, 친절한 드레이크..... -o-;;;;
  • 소시민 2008/12/07 15:38 #

    대영제국 기사다운 면모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ghistory 2009/03/25 01:37 # 답글

    이 책을 비판하는 서평:

    김성준,「타인의 역사로 빌려 쓴 항해 없는 '대항해시대'」,『역사와 문화』16(푸른역사, 2008)
  • 소시민 2009/03/25 09:52 #

    나중에 찾아 읽어보겠습니다. 소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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